지방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의 확성기와 화려한 공약 뒤편에서, 세종의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는 학부모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시장도 시의원도 아닌, 내 아이를 가르칠 어른들을 고를 사람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 손에 쥐는 투표용지는 여러 장이다. 다른 칸에는 기댈 난간이 있다.
이름 옆에 정당이 적혀 있어, 잘 모르겠으면 평소 마음 둔 당을 따라가면 된다. 판단을 당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 칸만은 다르다. 정당도 기호도 색깔도 없이 이름만 나란하다. 기댈 데 없이, 오롯이 내가 지는 한 표다.
그 칸이 정하는 것은 한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한 교실의 공기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방, 그 방을 채울 어른들을 고를 사람이 바로 그다. 아이는 공보물을 읽지 않는다. 토론회도 보지 않는다. 누가 몇 퍼센트인지, 어느 쪽이 보수고 진보인지—그런 건 아이의 관심 밖이다.
아이가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어른이다. 어른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그래서 그 자리에 요구되는 것은 공약의 화려함이 아니다. 아이 앞에 떳떳한가 하는, 가장 오래된 기준이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법을 지키라고, 남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 일의 맨 윗자리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그 답을 적어 드릴 필요는 없다. 들여다보면 보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부끄러움은 틀린 선택에서 오지 않는다. 무심한 선택에서 온다.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 가장 아이에 가까운 한 표를 가장 아무렇게나 다뤘다는 것.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나 자신이 안다.
세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학부모와 학생이 모인 교육 도시다. 우리 아이가 자라 "나 세종에서 학교 다녔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당함이 되어야 한다.
사흘 남았다. 다른 칸은 잊어도 좋다. 그 한 칸만은, 훗날 다 자란 아이가 그 선택을 돌아볼 때 그 눈을 마주 볼 수 있을 만큼만 들여다보자. 아이는 지금 옆에 없다. 그러나 보고 있다.

1
2
3
4
5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