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에서 손에 쥐는 투표용지 중 교육감 칸에는 정당도, 기호도, 익숙한 색깔도 없다. 누구의 뒤에 숨을 수도 없는, 투표소 안에서 가장 외롭고 엄중한 한 표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는 유권자에게 가장 부끄러울 수 있는 표이기도 하다.
당장 우리가 마주한 세종 교육감 후보들의 실상부터가 참담하다. 공동폭행과 공동주거침입 등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명백한 폭력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가 있는가 하면, 학교장 시절 감염병 위기 속에서 방역 지침과 교육청 공문을 어겨가며 교사들에게 교과서 직접 배달을 독단적으로 지시해 거센 비판을 받은 후보도 있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마라, 법을 지켜라"라고 가르쳐야 할 자리에 폭력 전과자가 앉거나, 안전보다 행정 편의주의적 독선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이 들어선다면 우리는 이 모순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이들이 물어올 때 고개를 들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무심코 던진 한 표가 이 결함을 눈감아준다면, 그 부끄러움의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의 몫이 된다.
물론 정당 마크도 없는 칸에 아무렇게나 도장을 찍어도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자신은 똑똑히 안다.
내 아이가 살아갈 교실의 공기를 결정하는 그 외로운 칸에서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말이다. 부끄러움은 단순히 틀린 선택이 아니라,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음에도 방치해 버린 '무심한 선택'에서 온다.
기표소 커튼 안은 늘 혼자지만, 부모는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아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공보물이나 지지율 같은 정치 공학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가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어른의 뒷모습이다. 어른이 입으로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뒤돌아서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는가를 본능적으로 눈에 담는다.
교육감은 내 아이를 가르칠 어른들과 교육 환경을 통째로 결정하는 최종 책임자다. 아이가 거실에서 부모와 보내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머무는 교실이라는 방, 그 방의 격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 어떤 자리보다 도덕적 기준이 엄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년에 한 번, 어른들의 세계는 표 한 장으로 우리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아이에게 조용히 증명해 보인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에서 젊은 학부모와 학생의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우리 아이들이 훗날 사회에 나가 "나 세종에서 학교 다녔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닌 당당한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격은 결국 교육감의 품격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제 선거는 사흘 남았다. 이름만 나란히 적힌 그 외로운 한 칸만은 훗날 내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깊이 들여다보자.
평생을 강단과 교육 경영에 바치며 어떠한 전과나 도덕적 의혹 없이 검증을 마친 품격 있는 인물을 골라내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지금 이 손이 미는 도장을 10년 뒤 다 자란 아이가 알게 된다면, 그때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을까.
아이는 지금 기표소 옆에 없다. 그러나 보고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한 표, 그거면 된다. 당당한 부모가 될 것인가, 부끄러운 유권자가 될 것인가.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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